
감독 : 시노하라 데츠호
출연 : 다나카 레나, 사나다 히로유키, 하라다 미에코, 히라타 미치루
모든 사람과 사물과 현상에는 보여지는 것만이 전부인 것은 아니다. 그 표피 속에는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존재하는 법이다.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의 이야기들이 아름답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자'가 스스로 그 안에 숨겨진 아픔을 아름다움으로 포장해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 이외의 사람들, 심지어 '사랑 대상자'조차도 그 '사랑하는 자'만의 숨겨진 아픔을 다 가늠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반면에 '사랑하는 자'가 포장해놓은 사랑이야기에는 '사랑 대상자'의 속사정을 자리해줄 길이 없는 법이다.
이처럼 자신에게 관계되어진 자들의 아름답게 표현되어진 이야기들 속에 말못할 슬픔이 숨겨져 있고, 안타깝고 슬프게 느껴지는 이야기 안에도 기쁨과 아름다움이 숨쉬고 있음을 안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물방울 표면을 보면서 그 속을 이루는 여러 성분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듯, 책이나, 영화나, 노래 등으로 부단히 간접 경험하는지도 모른다.
봄방학의 시작, '아이다 사토카(다나카 레나 분)'는 자신을 둘러싼 사랑이 빠져나가는 상실을 경험한다. 하나는 짝사랑의 실연이며, 다른 하나는 병으로 죽음을 향해 가는 엄마(하라다 미에코 분)의 갑작스런 병원 입원이다. 두 개의 사랑이 이 소녀에게서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순간, 예상치 못하게 소녀에게 다가오는 것은 엄마의 봉인된 추억이다. 엄마가 고이 간직하던 것을 건네준 고장난 오르골 속에 자신이 살아온 것보다도 더 오래된 엄마의 첫사랑이 사진과 함께 편지 속에 담겨져 있음을 발견한다. 봉인된 추억, 부치지 않은 편지, 소녀 자신이 모르는 기억을 발견하게 된 셈이다. 아직 짝사랑밖에 해보지 못한 소녀에게 사랑의 결과가 이루어졌던, 이루어지지 못하였던 간에 첫사랑이란, 단어 하나만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아름다운 환상일 수밖에 없다. 당사자들에게 더 이상 환상은 아닐지라도 17살 소녀 '사토카'에게는 잡지 못하였기에 더욱 안타까운 - 그래서 잡혀진 현실인 아빠(히라타 미치루 분)에게 소홀하게되는 - 사랑인 셈이다.

"우리 이대로 끝나는 건가요? 그 벚꽃나무 아래에서 다시 한번만 만나주세요.."
부치지 못한 편지 한 장과 아름다운 오르골 소리로 다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옛 시절 엄마의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은 소녀 '사토카'가 엄마를 통해서 느끼게 되는 첫사랑으로 자리바꿈하고 이는 의미가 변질된 반복행위에 가깝다. 24년 전의 엄마가 부치지 못한 편지의 상대자에게 편지를 전해주고서는 벚꽃나무 아래서의 만남을 이루어보고픈 부푼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미 엄마의 첫사랑인 '후지키 신이치로(사나다 히로유키 분)'는 자신이 꿈꾸던 그러한 남자가 아니었다. 그러하기에 엄마에게 해드리고픈 선물로 '신이치로'와의 만남을 주선하고자 하지만 선물을 그럴싸하게 포장(?)하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자신의 환상 속 인물을 만들기 위해 봄방학 내내 '신이치로'와 씨름을 하는 가운데에서도 소녀는 한 번도 '엄마가 왜 편지를 부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결국, 벚꽃나무 아래에서 만나기로 한 전날 밤, '신이치로'는 '사토카'에게 묻는다. "왜 다시 만나게 하려 하느냐?"고.."왜 엄마가 편지를 부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보았느냐?"고..그리고는 자신의 옛 심정을 고백한다. "그 편지를 받고 싶었다"고..

소녀는 어떠한 대답도 하질 못한다. 왜 그토록 자신이 두 사람을 만나게 하려 했는지, 기본적인 답도 못하고 만다. 그리고 소녀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두 사람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에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어쩌면 자신만이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알아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소녀가 사람들의 숨겨진 곳에 대한 이해라는 낯선 여행을 하는 동안, 고장난 오르골 속에 숨겨진 엄마의 옛 추억은 다른 사람들의 잠들었던 사랑을 하나, 둘 깨워 나간다. 아빠는 엄마에 대한 사랑을 다시 일깨우고는 오래 전 깨져버린 커플 잔 하나를 다시 구입하여 짝을 맞추고, 엄마는 가족에 대한 사랑을 느끼고 자신이 없어도 집안 일을 잘 꾸려나가도록 하나하나 집안 일을 목록으로 작성하며, 자신의 침실에 잠든 딸을 그윽한 미소로 바라보며, "너에게 하고픈 말이 많이 있는데.."라며 말한다. '신이치로'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소녀 '사토카'로부터 자신의 죽었던 딸에 대한 그리움을 발견하고 가족을 그리워하게 되며, 이혼한 후에 멀리 떠나버린 아내를 만나러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이처럼 이루어지지 못하였기에 안타까웠던 첫사랑의 움직임은, 그 순간 잠들어있었던 여러 형태의 사랑을 깨우고는 느끼도록 만들어주었다.
사랑의 변주곡이 연주되어졌다.

글. 전준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