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라메, Libera Me, 2000> 자신을 구하려는 사람들 (2000/12)
감독 : 양윤호
출연 : 최민수, 차승원, 유지태, 박상면, 김규리, 이호재
그리 폭이 넓지 않은 길에는 주차된 차들과 불난 것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길가에 널려져 있으며, 화재발생지역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할 소방차들은 이 어질러진 장애물들에 의해 먼발치에서 속만 애태우며 방관자의 입장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렇지만, 주변의 장삼이사(張三李四)와 같이 불난 것을 구경만 하는 상황에 처한 그들은 더 이상 발만 동동거리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장비를 직접 챙겨들고서는 화재발생지역을 향해서 숨가쁘게 뛰어 나아간다.
화재를 진압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이기에 인파사이를 헤쳐 나아가는 소방관들과 이를 지켜보며 박수를 치고, 그 모습에 환호하는 일반 구경꾼들, 화재가 난 곳에 남겨진 이들의 생사를 안타까워하며 안절부절못하는 주위 사람들과 간신히 그 아수라장을 탈출하여 가쁜 숨을 고르는 피해자들, 이러한 지옥현장의 순간들을 사실적으로 강렬하게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연신 카메라 플래쉬를 터뜨리는 기자들 그리고 깨어져 흩어져버린 질서조각들을 추스르고자 애쓰는 경찰들과 불길에서 건져진 사상자들을 쉴 틈 없이 실어 나르는 구급요원들....이처럼 인간의 통제범위를 벗어난 불길의 요란스러움 앞에서 드러나는 군상들-그 모습들이 참으로 다양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싶지만, 어찌 생각해보면 일구어진 사회라는 공식에 '재난'이라는 변수를 대입시키는 순간에 으레 발생하는 답이 아니던가.
영화 <리베라 메>는 불이라는 이글거리는 배경화면을 깔고 불을 지르는 방화범을 화면 왼편에, 불을 끄는 소방대원들을 화면 오른편에 아이콘화 시킨 대립구조를 띄고 있다. 이 영화가 선과 악의 대결처럼 보여지는 것은, 불이라는 배경화면 때문일 것이다. 저마다 부여받은 상처와 그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옳고 그름의 판단을 벗어나서)을 지니고 있는 이들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라는 배경화면을 지우는 순간 드러나게 되어진다.

오른편을 살펴보자. 동료 인수(허준호 분)가 자신을 위해 행한 희생 때문에 치유키 힘든 상처를 떠안게 된 소방교 상우(최민수 분)는 영화 내내 그 상처와의 싸움을 불과의 싸움으로 위장하며 자신의 임무를 남들에게 두려움을 줄만큼 철저하게 수행해 나가게 된다.
이러한 그의 개인적인 싸움은 동료들 모두에게 하나의 우울함으로 전염되어지고 새로운 파트너가 된 현태(유지태 분)는 상우를 누구보다 두려워하게 된다. 어쩌면 현태라는 캐릭터는 소방관들이 느끼는 감정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캐릭터가 아닐까? 오랜만의 휴식을 아이들과 못함에 미안해하면서 자신의 직업이 소방관임을 강조하며 화재현장으로 달려가 담담하게 최후를 맞이하는 한무(박상면 분)나, 군말없이 주어진 임무를 묵묵하게 수행하는 도끼(김수로 분)나, 체력의 한계를 느끼면서도 명퇴의 그 날까지 임무를 행하는 인호(이호재 분) 그리고 단지 소방관이라는 것이 폼 나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지닌 준성(정준 분) 등에게도 깊이 숨겨진 마음은 두려움일 것이다.
"불 속에서는 죽고 싶지 않다"며 울부짖는 현태의 모습은 그들의 당당한 모습 뒤에 숨겨진 진심이 아닐까? 길을 걸어가다 넘어져 자신의 뱃속에서 오장육부가 다 튀어나오는 최악의 상처를 경험했기 때문에 다시 넘어진다 해도 그러한 경험보다 깊은 상처를 당할까 하면서 스스로 강해지려 한들, 가끔씩 밀려오는 넘어지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숨길 수가 없는 법이다. 이들 모두는 그러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신들을 불길 속에서 구하고자 하는 자들이다.

왼편을 살펴보자. 어머니의 부재와 아버지의 지나친 학대 속에서 자라온 희수(차승원 분)는 누나와 불의 도움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 그 때문에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게 해준 구원자적 역할인 누나와 불이라는 것이 그의 정신세계를 끊임없이 간섭하고 있다.
소년시절에 그는 정신병원에서 지내던 중 자신을 괴롭혔던 아이들을 복수하기 위해 방화를 저질렀고, 이로 인해 실형을 받고 12년 형기를 마치게 된다. 이제 출소한 그는 본격적으로 방화를 저지르기 시작한다. 아버지에 대한 반발은 희수를 아버지의 법칙으로 가득한 사회의 전복을 꿈꾸게 하고, 그 수단으로 어릴 적 자신을 구원시켜주었던 불을 선택하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어머니의 부재에서부터 자신을 구하기 위해 희생했던 자신의 누이에 대한 기억은 그를 결핍으로 몰고 간다. 이러한 결핍을 자신을 치료해주고, 항상 감싸 안아주었던 여의사(정애리 분)에게서 보상받으려 하지만, 그녀 역시 그를 믿기를 거부하고 등지고 만다. 정리해보자면, 그에게 불은 사회 속에서 결핍되어진 자신을 구하려는 수단인 것이다.
결국, 이러한 결핍에 대한 보상은(다소 영화 속에서는 어설프지만) 민성(김규리 분)에게로 떠넘겨지는 것 같다. "그만 해"라며 꾸짖는 민성의 절규는 희수에게 어머니의 부재라는 결핍을 조금이나마 보상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완전한 보상은 아니다.

이처럼, 영화 <리베라 메>에서 불이라는 것을 빼는 순간 보여지는 것은, 자신을 구하려는 자들의 몸부림이다. 방화범은 결핍되어진 자신을 구하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으며, 화재를 진압하고자 하는 소방관들은 매순간 느끼는 두려움에 빠진 자신을 구하고자 몸부림을 친다. 그리고 나는 몸부림들을 구경을 하고, 환호하며, 박수치고 있는 것이다.
글. 전준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