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그래픽 어페어, A Pornographic Affair, Une Liaison Pornographique, 1999> 사랑이라는 것, (2001/01)
감독 : 프레데릭 폰테인
출연 : 나탈리 베이, 세르지 로페즈, 자크 비알라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인터뷰 중에서 -
영화 <포르노그래픽 어페어>의 시작은 두 남녀의 개인 인터뷰이다.
"그것은 포르노그래픽적인 관계였습니다. 단지, 섹스만을 위해 만났던 것이지요."
그녀(elle-나탈리 베이 분)는 그(lui-세르지 로페즈 분)와의 지난 시절 만남을 그렇게 정의한다. 그(lui)도 그녀(elle)와의 만남을 시종일관 수줍게 회상해낸다. 그 시절의 기억은 그(lui)가 비닐에 보관하여 넣어둔 성인잡지처럼 화석화된 형상으로 남기고 싶지만, 그들의 기억은 각기 다른 형태로 희미하게 추억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만남이 어떻게 시작되었든지 간에, 그래서 그들의 서로 다른 기억의 접점을 어설프게 추정하면서 이야기를 따라가든지 간에, 분명한 것은 그들이 만났던 이유는 그녀(elle)의 말처럼 섹스를 위한 만남이었다. 그들이 만나는 공간은 창가에 위치한 어느 까페의 테이블과 붉은 빛이 감싸안은 호텔복도와 관객에게 무한한 섹스환타지에 대한 상상력을 제공하는 푸른빛으로 둘러싸인 밀폐된 호텔 방에 국한되어져 있고, 그들은 그 장소들을 경유하면서 일주일에 한번씩 육체적 관계만을 맺고서는 깔끔하게 다음 주를 기약하는 만남을 가졌던 것이다.
사랑하는 행위의 과정이 일반적으로(그것이 일반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첫 만남에서 시작하여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당사자들이 원하는 기준이 끊임없이 간섭 및 개입되는 과정을 통과하고 그에 따라 증폭되어진 열정에 이끌려 육체적 관계까지 다다르는 선형적 구조로 나열해 볼 때에, 주인공 그(lui)와 그녀(elle)의 만남은 간섭 및 개입의 과정과 그에 따라 분출되는 열정을 뛰어 넘어버린(아니 무시해버린) 상황에서 몸과 몸의 접촉을 먼저 한 것이다. 그 순간에 사랑하는 당사자들의 자기만의 사랑은, 즉 그 사랑의 개별성은 증발되어지고 만다. 각자 다르게 추억하는 만남과 관객 각자에게 다른 상상력을 요구하는 섹스장면은 이미 그 사랑이 지니는 개별성을 드러내었고, 동시에 조건 없는 만남 행위는 사랑하는 대상자 각자에게 지속적으로 간섭할 기준들을 묻어버렸다.

이제 영화가 그녀(elle)와 그(lui)를 통해 보여줄 것은 증발된 바닷물에 남겨진 염분결정체로 사랑하는 행위의 보편적인 개념이면서 본질에 위치한 것이고 그 진실을 보여준다.
절대 자기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지 않는 그들은 계속되는 만남 속에서 자기를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움도 결점도 무의미했던 이들에게 상대방의 아름다움이 보이기 시작했고, 결점이 눈에 들어오는가 하면, 이내 결점은 아름다움으로 감싸안아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다음주를 기약하며 헤어질 때에는 그녀(elle)는 슬프지도 않음에도 괜히 상실감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고, 그러한 눈물을 바라본 그(lui)는 당혹해하면서 일종의 소외감에 은근히 화를 내기도 하였다. 또한 그(lui)는 다시는 그녀(elle)를 못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상념에 사로잡혀 거리를 방황하기도 한다. 결국 그녀(elle)는 그(lui)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게 되고, 그들은 함께 살기를 다짐하고 만남을 가지게 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 되고 만다. 그(lui)는 생각하길, 그녀(elle)가 그만 만나자는 말을 하고 싶어하지만 먼저 말을 꺼내기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용기를 내야 한다고 결심한다. 그리고는 이제 그만 만나야 할 때가 되었다고, 지금의 좋은 감정조차도 망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elle)는 솔직히 함께 살자고 말하고 싶어했었다. 그것은 두 주인공을 배제시킨 채 오해로 드러나지만, 그녀(elle)는 그(lui)의 말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둘은 마지막 섹스를 나눈다. 그 후에 우연히 그녀(elle)는 그(lui)를 보게 되지만 그저 바라만 본다.

애당초 간섭이 발붙일 곳을 잃어버리자 그(lui)와 그녀(elle)를 둘러싼 모든 곳에 사랑이 숨쉬고 있었음이 보인다. 잠시 스치듯이 마주친 눈길에도, 가벼운 떨림이 있는 손끝에도, 가만히 내뱉는 숨결에도, 걸음에 흔들리는 어깨에도, 상대방을 둘러싼 공기에도, 그 공기의 떨림으로 들려오는 음성에도, 심지어 이별을 하게된 오해의 순간에도, 그냥 멀찌감치 바라보기만 할뿐인 순간에도 사랑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완벽한 만족 하에 완벽한 사랑을 꿈꾸면서 때로는 사랑은 없는 것이라 부정도 하며, 이 사랑에서 저 사랑으로 끊임없이 방황하도록 세상에 선고받은 사람들에게 사랑은 있다고, 그것들이 모두 사랑이었다고 영화는 말한다.
다시, 로만 폴란스키의 인터뷰를 기억해보자. 그리고 그의 인터뷰에서 "촬영하기" 대신에 "사랑하기"를 대입해보자. 사랑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얼마나 많은 간섭들의 강요로 인해 사랑하는 것의 공간을 좁혀왔던가. 내 자신이 정해놓은 공간에서 우리는 사랑을 구하고자 하는 바람에, 눈길 닿는 곳곳에 묻어있는 그 많은 사랑을 외면하고, 부정하면서 혹은 숨기우고 살아왔던 것은 아니었던가? 정말 우리는 사랑이란 것을 해왔고, 행하고 있는가?

마지막, 내 아는 이는 이 영화를 두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여 장미 빛으로 변하기 시작한 세상을 깨기 싫다면, 보지 말 것.
사랑의 중반을 지나 이제 그의 아름다움도 결점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면, 둘이 함께 보되 조금은 떨어져 앉을 것. 사랑은 끝났으나 아직 그를 보내지 못하였으며, 그것이 가슴을 찢는 고통이라면 절대 보지 말 것. 그러나 이제 담담히 보낼 준비가 되었다 생각된다면, 눈물이 창피하지 않도록 조조나 마지막회를 고를 것. 그리고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사랑이란 것을 알고 싶은 이라면, 놓치지 말고 반드시 볼 것.".....이라고.
글. 전준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