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점프를 하다, Bungee Jumping Of Their Own, 2000> 운명적 만남은 피하고 싶다 (2001/02)
감독 : 김대승
출연 : 이병헌, 이은주, 여현수, 홍수현, 이범수
그 후 이들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서로를 찾아 나선다.
사랑은 우리들 자신의 상실된 반쪽에 대한 동경이다." -플라톤, <향연>
맑은 멜로드라마에 소울메이트(soulmate)와 윤회설을 적절하게 섞어 놓은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는 자신들의 잃어버린 반쪽을 사랑으로 만나게 되는 두 남녀의 이야기다. 일단 모든 것들을 믿어보자.
반복되어지는 자신의 생에 운명적으로 한 번은 만나게 되는 상실된 반쪽과 같은 인연이 있다면, 살아가는 데 있어 알 수 없는 설렘을 느끼게 되는 오직 한 사람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면, 그 인연과 같은 시공간에서 숨쉬어 갈 확률과 눈이 마주칠 정도로 가깝게 마주치게 될 확률, 만남으로 이어져 친해질 확률 그리고 사회의 법칙이 허용하는 범위내의 사랑으로 발전될 확률 등을 가만히 따져 보자니 영화 속의 사랑이야기는 축복 받은 남녀의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운명적인 만남조차 없이 상실된 반쪽에 대한 동경만으로 생을 마치게 될 것이라는 답이 나오고 세상에 가득 떠도는 사랑에 대한 쓸쓸함을 다루는 이야기들의 출처를 가늠하게 된다. 나와 당신이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시작은 축복 받은 사랑 이야기다.
1983년, 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갑자기 인수(이병헌 분)의 허름한 우산 속으로 태희(이은주 분)가 뛰어들어온다. 숨이 멎어버린 듯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들의 고요한 소요, 들려오는 빗소리만큼이나 두근거리는 설레임 그리고 예감. 그들은 사랑을 예감한다. 하나의 우산아래 비를 피하는 그 순간부터 두 남녀는 이미 하나가 되었고, 점점 서로를 알아가면서 사랑은 커져만 간다. 그러나 신은 그들에 대한 시기하는 마음을 가득 실어 주사위를 던지고 말았다. 입대하는 날, 기차역에서 인수는 태희를 기다리지만 그녀는 영영 오질 않았던 것이다. 남자의 첫사랑은 그렇게 그리움만을 안고 오랜 시간동안 잠들게 된다. 사랑은 그렇게 끝났고 신화는 지속되어진다.

이제 남자는 기억으로만 존재할 뿐인, 그러나 그 기억조차 점차 희미해져만 가서 안타깝기만 할뿐인 첫눈에 알아보았던 사랑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기억에 각인 시키고자 서로서로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건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리움은 증폭을 거듭해가지만 기억은 소멸을 향해서 달음박질을 하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잊혀져 가는 부분에는 어느 순간 새로운 사랑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알게 되고, 저 사랑에서 이 사랑으로 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일정한 나이가 되자 무언가에 쫓기듯이 결혼을 하게 되고, 어여쁜 딸을 낳고 자신의 인생에 있어 가장 두근거렸던 사랑의 기억은 추억으로 남겨두고는 현재를 사랑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랑은 완전하지 못함을 알고 있다. 곁에 누군가가 있어도 또 다른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정말 사랑하는 것일까?"라며 의문을 던져보기도 한다. 서로 반쪽이라며 만나서 하나가 되었건만, 그 모습은 어설퍼 보이기만 하고 틈새를 여기저기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미 사회 속에서 체념이라는 것을 배운 자에게 완전한 사랑은 꿈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지혜롭게도 타협을 적절하게 할 줄 아는 인간인지라 체념이라는 것을 유용하게 사용하면서 현재의 사랑이 주는 허전함을 받아들인다. "사랑은 하면 할 수록 쓸쓸한 것"이라며 스스로 위안을 하게 된다.

그렇게 살아간지 17년, 인수는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한 학급의 담임선생님으로 서있다.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 해달라는 아이들의 요구에 알싸한 추억을 빼앗길까 수줍은 미소만으로 첫눈에 반한 사랑이었다고 말하며, 눈만큼은 진실하다는 생각에 학생의 진실을 눈으로 판단하는 존경받는 선생님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신은 인수에게 또 한번 짓궂은 장난을 건다. 현실의 바깥으로 치워놓은 태희에 대한 기억들을 인수의 제자 현빈(여현수)을 통해서 하나씩 끄집어내게 만든 것이다. 한 번의 생에 두 번의 운명적인 만남이라는 이 믿기 싫은 확률에 갇힌 채, 가슴아픈 기억이 살아있는 인수에게 사랑하고 싶어서 또는 사랑하기 때문에가 아닌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사랑하게 되는 운명적 비극은 그렇게 시작되고 말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제일 떠올려지는 것이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신화이야기라면, 뒤늦게 떠올려지는 것은 쉘 실버스타인의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이다.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을 노래하며 힘겹게 굴러다니며 잃어버린 자신의 한쪽을 찾아 나서는 이 빠진 동그라미의 이야기. 완전한 사랑은 잃어버린 반쪽이나 한쪽(혹은 이 빠진 동그라미)에 대한 동경에 머물러 있을 때에 아름다울 것이고, 일상을 살아가는 자에게 살아가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사막을 지나가는데 지쳐버린 자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이 오아시스의 신기루가 되듯이 말이다.

만약 운명적 사랑을 마주치게 된다면, 살짝 비껴 지나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니 비껴 지나치고 싶다. 결국 잃어버린 한쪽을 찾은 동그라미가 나중에는 한쪽을 포기하듯이 말이다. 그리고는 다시 노래를 불렀다지."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하면서
글. 전준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