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콜렉터 (The Bone Collector, 1999)
감독 : 필립 노이스
출연 : 안젤리나 졸리, 덴젤 워싱톤,
퀸 라피타, 마이클 루커, 마이크 맥글론,
루이스 구즈먼, 리랜드 오서, 에드 오닐
첫 번째 질문..왜 오래된 종이일까?
두 번째 질문..왜 신출내기 여경찰인가?
재미있는 심리테스트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은 경찰입니다. 지금 어느 한 아이의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갔지요.
아이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철길옆에 자갈들이 깔려있는 곳에 죽은 사람의 손이 자갈들을 뚫고 하늘을 향해 뻗쳐 있습니다. 얼굴이 있을법한 위치에 자갈들을 치워보니 아니나 다를까, 죽은자의 얼굴이 당신을 노려보고 있습니다. 또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 당신은 철도길을 살펴보니 그 곳에 이상한 흔적(오래된 종이)이 있습니다.
분명 이것은 무언가를 암시하는 것 같은데, 갑자기 저기서 기차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현장을 보존하기 위해 당신은 기차를 멈추겠습니까?
아니면 그 흔적물들을 손에 쥐고 옮기는 융통성을 보이겠습니까?
(전자를 택하신 분은 이 영화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후자를 택하신 분도 이 영화의 조연을 맡을 자격이 있지요. 그러나 등에 칼 꽂히는 날이 올 겁니다.)

영화 <본콜렉터>에서 신참 경관 아멜리아(안젤리나 졸리)는 현장을 보존하기 위해서 기차를 세우는 무모한 짓을 행합니다. 그리고 사고로 사지가 마비되어 손가락만 까딱거리는 법의학 전문 형사 라임(덴젤 워싱턴)은 이 사건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는 아멜리아를 그의 분신으로 지목하지요.
그렇다면 여기서 두 번째 질문부터 해결해보지요. 왜 신출내기 여경찰인가?
신출내기의 단점은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것이겠지요. 수많은 형사물 영화속에서 신참은 고참의 노련함에 감탄합니다. 그렇지만 그 노련함이 과연 표준에 입각한 노련함은 아닐 것입니다. 노하우가 쌓인 이상 융통성도 늘고, 요행도 부리고 결국 그만큼 능숙능란하게 일처리하는 것 같을 뿐이지요.
하지만, 신참의 특성은 다릅니다. 뭐든지 정확하게, 확실하게, 미숙하지만 완벽하게 하려는 특징은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사항들을 놓치고 마는 실수를 하게 되지요. 그러한 실수들이 부족하게 보이게 할 뿐입니다. 아멜리아는 운이 따랐든, 안 따랐든지 간에 현장보존에 있어서 완벽함을 보여주었습니다. 비록 기차업무가 마비되었다 할지라도 그녀가 행한 행동은 경찰업무로는 완벽한, 고참들이 보기에는 무모하고 답답하게 보일지라도 FM다운 행동이었지요. 현장보존에 있어서 가장 악질적인 적이 바로 경찰들이라 믿는 라임에게서 아멜리아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아직 융통성이라는 것을 몸에 익히지 않은 신참에 차분하게 일처리 하는 모습....그 때문이지요.
이제 그 증거물들을 고스란히 가져와서 분석을 해보니, 이상스럽게도 모든 것들이 다 오래되었다라는 공통점을지니고 있습니다. 계속 발생하는 살인현장 주변에서도 범인이 일부러 남긴 암시물들은 모두 오래되었다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첫 번째 질문을 해결해봅니다. 왜 오래된 종이일까?
영화가 계속 진행되는 동안 오래되었다는 것들에 떠오는 이미지는 세기말에 위치한 시대에 있어 금세기초를 고찰하고픈 연쇄살인범의 의지가 담긴 것은 아닐까 싶어서 <카피캣>에서 나왔던 폴리스의 노래 <차례로 살인하기>의 "넌, 살인을 예술로 변하게 할 수도 있을거야"라는 구절을 떠올려지게 하였지만, 영화의 끝자락에 다다르면서 <본 콜렉터>의 범인은 <쎄븐>이나, <양들의 침묵>, <카피캣> 같은 종류의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그러나 자기만의 세계안에 세워진 법칙에 따라 행하는 연쇄살인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들의 예술행위에 발끝만치도 다다르지 못한, 라임에 대한 복수를 하고픈 자의 지식싸움이었습니다. 라임에 의해서 자기가 밀려났다고 생각한 자가 "네가 잘났으면 얼만큼 잘났는지 보자"며,역사책을 펴놓고 역사문제를 풀어보라는 것이었지요, 오래된 종이, 나 이만큼 안다라며 자랑하고픈 한맺힌 법의학 지식인의 슬픈 과시일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