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 오기환
출연 : 이영애, 이정재, 권해효, 이무현, 공형진
배낭 하나만을 둘러메고, 그것도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비어있는 배낭 하나만을 둘러메고 여행을 떠나보자.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나를 향해 숨막히게 조여왔던 것들 혹은 겹겹으로 나를 얽어매 왔던 것들을 다 떨구었다는 기분이 들기 전까지 '절대 다시는 일상으로 돌아오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을 하고서는 일탈을 향해 도망치듯 떠나는 여행을 말이다. 그렇게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자신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놓아버리기 위한 '잃기 위한 집착'이라는 혼자만의 여행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잃기 위해 떠난 여행은 곧 자신에게 주어졌던 것들이 그리워지는 가슴앓이의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가짐'을 잃고 나서야 다가오는 그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안타까움. 여행이란 것을 통해 느끼게 되는 묘미는 바로 그러한 것이다. 일상에서 일탈로 향해 나아가면 갈수록 일탈에서 일상을 꿈꾸는 시행착오의 경험.
그런데, 여정을 통해 모든 것들을 다 떨구었다 해도 돌아올 수 없다면, 애당초 돌아오지 못할 여행을 자신이 하고 있는 중이라면? 여기 한 여자가 그런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 자신의 몸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자신의 영혼은 점점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 서서 머물고싶다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다.
영화 <선물>은 고전적인 멜로 드라마이다. 불치의 병으로 죽어 가는 아내 '정연(이영애 분)'과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남편 '용기(이정재 분)'가 벌이는 눈물의 이야기. 아내에게 병이 있음을 알게되는 순간 관객에게 뻔한 결말을 감지시키고는 뒤척거리며 손수건을 미리 준비시키는 최루성 영화이지만, 영화의 끝은 그렇게 많은 눈물의 카타르시스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정연'에게 주어진 죽음은 어느 시인의 시처럼 으레 돌아가야 할 곳으로 가는 편안한 무엇으로 느껴질 뿐이다.

'정연'은 밤늦게 자신이 잠들면 몰래 들어오는 남편 '용기'에게 이혼하자고 요구하고, 남편과 같은 방을 사용하지도 않는다. 정신 못 차리는 남편을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다. 무능한 삼류 개그맨이 직업인 남편을 향해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정말 헤어지기로 작정하고 으르렁거리는 모습이다. 단지, 그렇게 대하는 이유가 무능한 남편과의 삶이 한심스럽고 싫어졌기 때문이었을까? 영화 초반의 이러한 의문들은 그녀에게 예정된 죽음이 기다리고 있음을 감지하는 순간,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든다. '정연'은 지금 '잃기 위한 집착'이라는 일탈여행을 하는 중이고, 그 여정은 혼자서 간직하고 앓고있는 아픔처럼 힘들고 쓸쓸하기만 하다.
매일 아침이면 푸석푸석한 얼굴로 아침을 준비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남편이지만, 아침 햇살에 깨어나 스치듯 눈길만 마주치게 되는 남편과의 짧은 만남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음을 남편은 모르지만, 그녀는 알고 있다. 한쪽은 마지막임을 알고있지만, 다른 한쪽은 마지막이라는 것 자체를 생각하지도 않는 가장 슬픈 이별의 유형에 그들이 놓여진 셈이다.

뒤늦게 그녀의 아픔을 알게된 남편 '용기는 집으로 달려들어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정연' 앞에서 그녀가 지닌 병에 대해 물어보지도 못한다. "왜 자신이 왔는데 내다보지 않느냐"고 말할 뿐이다. 그녀의 죽음으로 가는 여행에 같이 동행을 해주고 싶지만, 아내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그가 동행해주기엔 이미 늦어버렸고, 그가 들어갈 틈조차 없음을 안 것이다.
이제 그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그녀의 여행을 쓸쓸하지 않도록 도와줄 뿐이다. 초등학교 시절의 아내가 짝사랑하던 친구를 찾아주려 애쓰고, 그녀가 고아라고 결혼을 반대하셨던 부모님을 찾아가 뵙고, 틈나는 대로 그녀에게 줄 약들을 자신의 출연료 대신 주었다며 갖다준다. 하지만, 그녀는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자신에 대한 배려에 당혹스러울 뿐이다. 행여나 다른 이들이 자신의 아픔을 눈치채게 될까봐 조심스러워 하고, 정(情)이라는 것이 남을까봐 때로는 짜증을 내면서 또는 화를 내면서 지내왔건만, 자신에게 남편이 던져주는 배려 때문에, 자신이 삶에 미련을 두는 부질없는 마음을 가지게 될까봐 또는 담담하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할까봐 더욱 안타깝게 할뿐이다. 그녀가 행해왔던 '잃기 위한 집착'이라는 여행은 도리어 '가짐'이라는 것이 주는 사랑의 소중함을 얻게된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여행에는 일상으로 돌아올 길이 없다.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와 아들을 만나러 저 세상으로 떠나는 순간, 남편은 개그 프로그램에 나가서 방청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용기'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지만, 그 눈물은 웃음으로 비춰질 뿐이다. 마음속으로는 쓰러져 가는 '정연'의 모습을 보며 울고 싶지만 겉으로는 웃음을 선사할 수밖에 없는 현실. '용기'의 개그를 지켜보는 방청객은 그 웃음 속의 슬픔을 모르지만, '용기'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그 웃음 속에 깊이 숨기어진 슬픔을 안다.
글. 전준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