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 가이 피어스, 캐리-앤 모스, 조 판톨리아노, 스테판 토볼로스키
발칙한 구성
끊임없이 '존. G'를 찾아내어 복수하고자 하는 삶의 굴레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주인공 '레너드(가이 피어스 분)'의 처지를 하나의 뫼비우스 띠로 표현하는 듯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영화 <메멘토>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며, '기억해야'하는 이야기이다.
'단기 기억 손실증'에 걸린 주인공 '레너드'는 10~15분마다 새로운 기억들과 싸워야 하며,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새로운 장면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이전 장면들을 기억해야 하는 치열한 싸움을 해야 하는 셈이다. 컬러장면과 흑백장면이 교차하면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레너드'의 '타인에게 이용당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끊임없이 홀로 추적게임을 할 수밖에 없'는 결코 벗어나지 못할 삶의 굴레라는 큰 울타리의 육중한 무게중심을 향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기억은 윤색되는 것'임을 '레너드'에게나 관객인 나에게도 둔기로 내려치는 듯한 아픔으로 안겨 주게 된다. 현재 내가 기억하는 것들은 나를 대변해줄 수 있는가?
뇌의 해마부분의 손상
이는 단기기억장치로 끊임없이 들어오는 새로운 기억들을 장기기억장치로 제대로 넘기질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레너드'는 '아내가 강간당하고 살해당했다'라는 확고한 믿음상태에서 뇌를 다치게 된다. 그의 장기기억에 있어 아내는 강간당하고 살해당한 상태인 셈이다. '레너드'가 다치기 직전 마지막으로 아내의 깜빡거리는 눈을 기억하는 것은 '죽어가는' 아내의 눈을 기억하는 것이지, '살아나는' 아내의 눈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즉, 객관적으로 보여지는 것들에 대한 기억이 충분히 설명되어지기도 전에 '레너드' 자신의 주관적 해석에 의해 '살아나는' 아내가 아니라 '죽어가는' 아내로 고착된 셈이다.
그에게 아내는 사자(死者)로 각인되었기에 그녀가 살아있다 치더라도 자신의 아내로 받아들이질 못한다. 살아있는 아내는 병에 걸린 '레너드'에게 있어 유령에 가까운 존재로 받아들이거나,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느끼든지 혹은 '새미(스테판 토볼로스키 분)'에 대한 기억으로 넘겨버리게 될 뿐이다('새미'의 아내는 2분마다 기억을 잃어가는 '새미'를 실험하기 위해 인슐린 주사 놓기를 시계를 돌려가면서 실시한다. 그러나 그녀는 15분전으로 시계를 돌린다). '죽어가는' 아내에 대한 기억은 범인을 찾아내어 복수하겠다라는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를 상기시켜 줄뿐이다.

기억의 윤색
기억은 윤색되어진다. 자신에게 있어 아름다운 기억들은 더욱 아름다운 기억이 되고자 덧붙임과 제거를 반복하면서 원래의 기억을 개칠하고 만다. 꼭 기억하고픈 것들은 그렇게 기존의 기억을 변질시킨 채, 원판으로부터 저만치 달아나게 된다. '새미'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더욱 멋있어 진다는 '테디(조 판톨리아노 분)'가 '레너드'에게 던졌던 말은 '기억이란 끊임없이 윤색을 거듭하게 된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기억은 결코 진실로부터 점점 방향을 잃은 채 멀어짐을 가르쳐주는 인간의 기억에 대해 비꼬는 말인 셈이다.
문제는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이다'라며 기억이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질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래서 폴라로이드 사진 밑에 꼭 알아두어야 할 진실들을 짧은 글로 기록하는 '레너드'의 방법의 한계. 또는 기호의 한계이다.

"기표는 기의에 닿지 못하고 끝없이 미끄러진다"
짧은 메모를 통해서 적어둔 기록은 그 기록을 둘러싼 상황에서 벗어나는 순간, '레너드'의 자의적으로 혹은 읽혀지는 그대로 기록도 해석되어지고 만다. 자신이 잠깐 조는 순간, 꼭 기록해두어야 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기록할 도구가 없어 - '나탈리(캐리-앤 모스 분)'에 의해 기록도구가 강탈 된 상황 - 자신의 병에 떠밀려 새로운 기억들이 도망가는 순간에 '레너드'는 진실의 연결고리를 잃고 만다. 그리고는 동떨어진 기록들을 억지스레 연결시키면서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개인적인 감정에 의해 나쁜 사람이라 기록된 사람은 그 상황에 대한 고찰도 없이 항상 나쁜 사람으로 남겨질 뿐이다.) 기의를 상실한 '레너드'의 기표는 진실을 상실한 채 '과거의 나'를 안고서 떠도는 현실에 불과할 뿐이다.

'레너드'는 극단적인 인간의 표본이다. 기억은 개칠을 거듭하여 숨겨질 부분은 숨겨지고, 덧칠은 견고해져서 다른 색이 끼어 들어갈 틈이 없다. 기록은 기억의 진실을 동반하지 않은 이상 껍데기일 뿐이다. 그렇다면, 기억은 절대 진실되게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는 셈이다. 지난날의 기억을 가지고 자신이 정확히 누구인지 이야기 할 수 있는가? 인간은 영원히 치유불능의 존재일 뿐이다.
글. 전준모











